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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Google 면접이 준 힐링

어제 구글 최종면접을 봤다. 

4번의 면접은 다소 빡세게 느껴졌지만, 면접을 준비하고 치르면서

그동안 내가 살아온 이 한국 문화의 가치관, 나의 가치관에 물음표를 던질 수 있었고

실패라는 것에 대해, 인생이란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상하게도 이 면접과정을 통해 내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있던 삶에 대한 회의감과 자조, 죄책감과 자신에 대한 비난이

사라지게 되었다.

합격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결과론적이고 성공집착적인 나에게, 과정의 중요성, 순수한 목적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워준 이 시간이 감사할 따름이다.

 

구글은 "정답"보다는 문제를 대하는 자세, 사고방식, 풀어나가려는 의지를 보는 것 같다.

분명 1차 면접 초반에 영어를 버벅대어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감사하게도 유럽 CIO 면접관님은 나의 문제를 풀려고 하는 과정들을 묵묵히 지켜봐주었고, 그 다음 면접을 볼 수 있도록 패스권을

허락해주었다. 

참 신기했다. 

한국의 면접관들은 다 잘해도 뭐하나 삐그덕하면 탈락시킨다. 이제까지 내가 겪어온 바에 의하면 그러했다.

심지어 아무리 실무진에게 "같이 일하고 싶다"고 인정받고 실력이 있어도, 최종면접에서 "왜 정보통신기사 자격증"이 없냐며...(사실, IT 입장에선 실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격증 같은건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자격증은 실력을 대변해주지 못한다. 되려, 실력이 없는 경우 자격증으로 어필해야한다.) 마지막에 떨어트린 경영진도 있었으니깐...

 

하지만 구글은 달랐다.

뭔가 잘 못해도, 저 사람한테서 어떤 가능성을 보면 기회를 주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보는 그 가능성이란 것은 본질적인 것에 가까웠다. 

단순히 기술적인 것을 보는게 아니라 문제를 주고 그걸 풀어나가는 과정과 태도를 중요시한다.

 

한마디로 내가 느낀 건,

지식보다도 지혜를 중요시 하고

정답보다 태도를 중요시 한다.

 

내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게 된다.

사실, 나는 남들처럼 사교육을 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뭔가를 알아가는 과정이 즐거워 열정을 갖고 공부를 했고 그렇게 되면서 중학교때부터 고등학교 내내 쭈욱 전교1등을 했다.

강남이 아닌 경쟁이 덜한 서울 어딘가 학교이기 때문에 아마도 전교 1등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탐구심을 갖고 공부를 해 나가는 과정, 그리고 그 열정이 결과에 반영되어 좋은 결실과 인정을 받는 과정을 통해

성공의 맛을 보고 자신감도 많이 생겼었다. 

특히 수학에 열정이 있었다.

당시 나의 열정은, 수학 문제를 풀다가 한 2주정도 고민하다가도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출판사에 전화해서 물어볼 정도였다.

마치 미제사건을 풀어가는 형사처럼, 수학문제를 푸는 과정은 스릴있는 미션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학원에 가서 선생님들이 쓱쓱 다 풀어주고 푸는 과정을 외우는게 싫었다.

수수께끼를 푸는 게 얼마나 재밌는데, 왜 남이 알려준 걸 그대로 따라해야하는가.?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접근방법으로 수학 문제를 풀어가고 싶었고,

설사, 그 방식이 시간이 오래걸리더라도 남들처럼 문제풀이머신이 못 되더라도 그저 좋았다.

그 당시에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공부를 했다.

 

하지만 대입에 실패한 후 그런 순수한 자신이 바보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크게 자책하게 되었다.

 

대입은 현실적인 문제다.

사실, 대학을 안갈거면 공부를 왜 하는가? 현실적으로 말이다...

대학을 잘 가려면, 학원에 가서 수능 위주로 문제를 빨리 접하고, 유형을 익히고 적응하는 것이 좋은 전략이다.

그런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자신이 바보 같았다.

자신의 대입 전략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얼마나 오랜 세월 자책했는지 모른다.

물론, 어려운 가정형편에 대입 정보를 얻을 길도 없었고, 그 당시 인터넷도 활발하지 못해, 교육 정보가 부족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열악한 환경에 있었는데, 너무 과하게 자책했던 면도 없잖아 있다.

죄책감과 실패감은 30대까지도 지속되었다.

재수를 해서 소위 스카이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실패감이 마음 속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어서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자기비하를 하고 있었다.

그러한 실패감은 아무리 좋은 신의 직장, 대기업을 가도 마찬가지로 깔려있었다.

나도 그런 실패감이 전 인생에 걸쳐 지속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의식조차 못할정도로 이미 내면 깊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글 면접을 치르면서

반복되는 실패의 경험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서 "실패"에 대한 자기만의 재정의를 내리는 과정과 재해석, 그리고 이로인한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면서

 

과거 대입과 상관없이 순수하게 공부하던 과거의 내가 떠올랐고

그 과정에 부끄러움이 없고, 그 과정이 소중했음을 

이제서야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문제에 있어 나의 문제를 대하는 자세와 풀어가려는 과정, 태도를 좋게 봐주신 구글러들에게서

올바른 가치관을 다시한번 정립할 수 있게 되어 너무나도 감사했다.

 

 

최종면접의 결과는 모르지만,

이 과정은 나에게 정말 일생일대의 변곡점 같은 좋은 계기가 되었다.